나의 첫사랑, 뉴질랜드

처음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이라는 강렬함에 비교한다면, 처음은 비교적 흐릿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에 큰 의미를 둔다. 아마도 그 경험이 훗날의 사건들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 시도한 혹은 경험한 사건이 긍정적이지 않다면 다시는 그 일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처음'이라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건지도 모른다.


같은 연장선에서일까. 그런 의미로 뉴질랜드는 내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내 인생 첫 타지 생활이었던 그 곳에서의 생활은 매 순간이 새로움이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음식, 새로운 문화, 익숙하지 않은 언어, 그리고 정반대의 계절. 

평화롭고 즐겁고 또 아름다운 곳. 

그 순간들 덕에, 새로운 것을 마주한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설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거나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에도 내게는 아직도 따뜻한 곳이다.


2010년 2월 떠난 이후, 아직 다시 가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곳. 
나의 첫사랑 뉴질랜드.



  새파란 색만큼이나 강렬했던 그 곳, Kaikoura

뉴질랜드에서 2년 가량 머물면서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한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집에만 있었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기회가 또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최대한 많은 곳을 찾았다.

심지어 그 나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마을까지, 혼자 잘도 돌아다녔다.

북섬과 남섬,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며 많은 도시들을 만났고 그 나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중 작은 규모임에도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곳이 있었는데, 바로 남섬 동쪽 해안가에 자리안 카이코(우)라-Kaikoura라는 곳이다. 

도시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매우 작은 이 마을은 작은 관광도시이다. 대표적인 관광상품은 고래를 보러 가는 것.

뉴질랜드 바닷가에서 돌고래를 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이 곳은 돌고래가 아닌 진짜 고래를 볼 수 있다. 


100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거리에 기념품점과 레스토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마을. 

어디서나 파도소리와 바다 냄새를 배경으로 걸을 수 있는 거리들.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동네의 규모고 작고해서 나 역시 고래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이 버스를 타면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이렇게 파~란 배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아담했던 배.



배 안에 들어가 앉으면 운전을 하는 선장님과 스크린이 보인다.



그 스크린 안에서는 아마도 우리가 곧 만나볼 수 있는 고래에 관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의 내부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앉아서도 밖을 구경할 수 있는데 우리 말고도 다른 배 역시 고래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가던 배. 그 사람들은 어떤 고래를 만났을까.



스크린을 통해서는 우리 배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중간 중간 선장님의 안내도 이어지는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멀미에 대한 두려움 때문.

어릴적 소풍날 아침이면 멀미약을 꼭 챙겨먹었다. 잠깐만 차를 타도 토할 정도로 멀미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날도 근처의 약국에 들러 멀미약을 샀다.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그 고통을 도저히 겪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발을 하고도 한 동안, 어쩌면 다가올 멀미가 너무 두려워 그저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멀미만을 느끼던 즈음, 선장님이 배를 멈췄다. 이 때 까지 아마 40분~1시간 가량 배를 타고 나갔던 것 같다. 선장님은 밖으로 나가시더니 특이한 물체를 바닷속에 집어 넣으시고는 귀마개 같은 것을 쓰셨다. 알고보니 고래의 소리를 듣기 위한 장비라고 했다. 고래가 자주 나타나는 부근에서 이렇게 체크를 해가면서 위치를 찾아간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지 않으면 고래를 만나지 못할 수도, 반대로 여러 마리의 고래를 만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이나 배가 바다 가운데 멈출 때마다, 제발 한 마리라도 만날 수 있기를 빌었는데 그 기도가 통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여 약간의 거리를 두고 고래를 만났다. 그 순간을 위해 배를 멈추자 아이러니하게도 배는 더 많이 움직였다. 파도에 배는 움직이지, 고래는 계속 헤엄치지.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좋은 카메라를 들고 찍어대는 사람들 틈에서, 나 역시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어댔지만 제대로 찍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찍은 첫 사진 속 고래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그래도 처음은 역시 의미가 크니까!




그 후에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다, 저 멀리 다른 배 한 척을 발견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 고래의 소리를 듣고 찾아 온 모양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날의 베스트 컷을 찍을 수 있었다. 하늘이 나오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고래의 꼬리를 찍었다. 



숨을 내쉬며 물을 뿜어대는 모습도. 

그렇게 한동안을 바라보다 다시 육지로 향했다.



내 옆에 앉았던 일본인 2명은 출발과 동시에 멀미를 시작해 매우 고통스런 모습으로 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고래를 보러 나가지도 못하고,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다. 반면 그 건너편에는 사과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파도가 더 심해졌는데, 배가 너무 출렁이고 파도가 거의 배 꼭대기까지 넘실거리는 바람에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수영을 못해서인지 원래도 물에 공포심이 있는 나는, 괜한 생각이겠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도 무사히 땅을 밟았지만, 내 걱정이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이후로는 투어가 모두 취소된 것이다.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지만 파도가 점점 거세져 오후 투어는 모두 취소가 되었다. 겨우 하루를 머무는 계획이었으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 아무 일 없이 육지로 돌아온 것이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오후에는 동네의 언덕을 올라가기로 했다. 마을이 동해안에 위치하니,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경치가 꽤나 아름다울 것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찌저찌하여 프랑스 여성 관광객과 독일 남성 관광객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언덕을 올랐다. 경치를 관광하고 사진도 찍은 후, 숙소 바로 옆의 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던 프랑스언니과 채식주의자라며 레모네이드를 마시던 독일 아저씨. 

원래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혼자 여행하다보면 가끔 마주치게 되는 이런 상황이 싫지만은 않다.



겨우 하룻밤을 묵었지만 아직도 선명한 Kaikoura. 파~란 색으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카이코라.

넘실거리던 파도, 조금은 으슥했지만 왠지 해안가에 어울렸던 숙소. 아직도 많은 것이 머릿속에 선명하다.


언젠가 이 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다시 발길을 돌렸던 카이코라.

그런데 며칠 전, 뉴질랜드남섬부근에서 강한 지진과 쓰나미 경보 소식을 접했다. 

부디 아무도, 도시도 다치지 않고 무사하기를.

그리하여 언젠가 또 다시 고래를 만나는 행운을 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